Research Article
Literati Landscape Painting of the Southern Song
Published: January 2008 · No. 260 · pp. 143-174
Full Text
Abstract
북송이 멸망하고 남송이 건립되면서 회화의 중심지는 새로운 수도인 항주로 옮겨갔고 고종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강남지방의 회화가 크게 발전하였다. 북송 말부터 활동하던 화가들에 의해 북송의 산수화풍이 전해졌지만 웅장하고 강건한 북송의 大觀山水畵는 점차 강남의 자연경관에 기초한 남송산주화로 대체되었다. 남송대 산수화에 대한 기왕의 연구는 주로 화원화가를 중심으로 하는 직업화가의 작품에 집중되었고 문인산수화의 전통은 남송보다 금의 화가들에 의해 계승된 것으로 여겨졌다. 이 논문은 남송 산수화에 대한 최근의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현존하는 작품의 분석과 관련된 문헌자료를 통해 북송 후기에 형성된 문인산수화의 이론과 화법이 남송대 사대부사회의 문인문화를 배경으로 어떻게 계승되어 전개되었는지, 나아가 원대의 문인산수화 발전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를 고찰하였다.*br* 남송 초를 대표하는 화가 米友仁은 수묵이 지닌 표현가능성을 극대화한 독특한 필묵형식으로 오랜 문학적 전통을 지닌 소상지역의 실경을 자신의 경험과 의식에서 재해석한 자연으로 그려내어 私的이면서 개성적인 산수화를 완성하였고 역사 소상지역과 관련된 舒城李生의 〈瀟湘臥遊圖〉를 비릇한 후대 문인산수화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구체적인 장소를 묘사한 趙伯?의 〈萬松金闕圖〉와 李結의 〈西塞漁隱圖〉는 그림에 화가의 이념과 감정을 이입하고 화가와 정경이 합일되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함으로 원대에 유행한 문인의 은거지, 사유지, 정원 등을 묘사한 실지명산수화의 선례가 되었다. 한편 〈西塞漁隱圖〉와 趙葵의 〈杜甫詩意圖〉는 唐代의 詩詞와 연결되면서 문인화가 추구한 詩畵一致의 경지를 보여준다.*br* 남송대에 문인문화가 다양한 사회계층으로 확산되면서 문인들은 자신들의 가치관과 취향을 표현하기 위해 직업화가의 작품과 구별되는 주제와 양식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이 글에서 살펴본 여섯 점의 산수화는 남송의 문인화가들이 북송대 문인화의 전통을 이으면서 새로운 회화이념과 양식을 통해 李唐과 馬遠, 夏珪로 대표되는 당시 직업화가들의 작품과 완연하게 구분되는 문인산수화의 특징을 확립하였고 원대 문인산수화 발전의 기반을 마련하였음을 설명해준다. 이처럼 현존작품이 지니는 의미를 다원적이고 유기적으로 파악하는 연구는 남송대 산수화의 양상과 원대 이후 문인화의 전개과정을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줄 것으로 여겨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