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The Development and Transformation of Royal Court Painting and Calligraphy Collections during the Reign of King Gojong (1863-1907)
Published: January 2008 · No. 259 · pp. 79-116
Full Text
Abstract
본 논문은 고종 연간 궁중 서화수장이 고종의 정치적 입장과 왕권 강화의 일환, 대외적인 정국운영 등 다양한 배경 속에서 형성되어 전개된 양상에 관해 살펴본 것이다. 오늘날 왕실관계 자료를 가장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는 규장각과 장서각 소장 서화자료 중 상당수는 고종 연간에 수습ㆍ정리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이 시기의 典籍 및 서화수장에 대한 가치를 밝히는 작업은 미진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br* 따라서 이 글에서는 고종 연간 서화수장의 흐름을 재위 초기(1863-1873. 10), 재위 중기(1873. 11-1896), 대한제국기(1897-1907)로 구분하고 각 시기별 경향에 관해 살펴보았다. 그 결과 재위중기에 해당하는 19세기 후반이 가장 방대한 컬렉션이 형성되었고 이를 토대로 대한제국기 궁중 서화수장으로 이행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수장품의 관리와 내역에 있어서는 열성어필ㆍ어화, 前朝로부터 전래된 서화는 창덕궁 규장각 부속 전각에 보관되었던 반면, 新購入 서화 및 畵譜는 承華褸→緝敬堂→集玉齋라는 특정한 장소를 거치며 보관된 것도 고종 연간에 등장한 현상이다. 이러한 전각은 모두 국왕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던 私的인 영역에 속한 곳이었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이는 곧 18세기 이후 書畵收藏處가 주로 침전 영역에 설치되었던 전통과 유사한 맥락이었다고 하겠다.*br* 고종 연간의 서화수장은 왕실의 서화감상이나 수집에 대한 인식이 변천이라는 맥락에서도 이전시기와 구분된다. 즉 숙종 연간에는 서화감상을 통한 敎化에 치중했고 그 후 憲宗에 의해 순수 감상 목적이 부각되었다면 고종 연간에는 서화애호 차원보다 당대 최신 문화조류의 수용에 치중하여 정책적인 성격이 강했던 것이 특징이다. 당시에 수집된 국내자료 뿐 아니라 중국 및 일본에서 유입된 방대한 양의 서화작품과 畵譜는 19세기 서화계의 중국풍 유행에 대한 근거가 된다. 앞으로 이들 자료가 국내에 끼친 영황관계를 좀더 면밀하게 분석하는 작업이 과제로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