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The Place of Production and Route of Transmission of the Gold-Inlaid Sword from Tomb No. 14 of Gyerim-ro, Silla
Published: January 2008 · No. 258 · pp. 75-104
Full Text
Abstract
금제감장단검, 화살통장식, 장식대도 등의 무구, 금은입사철제안교, 은입사행엽, 등자 등의 기마구 등이 부장된 경주 계림로 14호분은 개마무사의 무덤이다. 이 무덤에서는 감장기법과 누금기법으로 표면이 화려하게 장식된 금제감장단검이 피장자 왼쪽 허리편에서 발견되었는데, 검집 측면에 부착된 P자형과 D자형의 장식판을 통해 허리띠와 연결된 것으로 판단되다. 이 글에서는 주목하지 않았던 패용구로 이해되는 P자형과 D자형의 장식판의 발생과 전개과정을 분석하여 계림로 금제감장보검의 구체적인 제작지와 수용경로를 살펴보았다.*br* 중앙아시아 수입품으로 알려진 이 금제감장보검의 구체적인 제작지와 수용경로를 분석하는 것은 신라 공예에 반영된 서방계 금공의 한 계보를 파악하는 문제뿐 아니라 신라에 수용된 기마문화의 성격을 알 수 있는 문제이다. 두 개의 패용구가 부착된 계림로 금제보장단검과 같은 형식의 검들은 기마민족과 관계된 지역에서만 출토되기 때문이다.*br* 패용구가 부착된 형식의 검은 처음 기마민족인 사르마티아(Sarmatia)에 의해 기원전 7세기에 발명되었다. 이와 같은 형식의 검은 월지를 통해 동서로 확산된 뒤 중국의 漢, 인도의 쿠샨(Kushan), 파르티아(Partia)와 사산조 이란(Sasanian Iran), 유럽의 아바르(Avar)에 의해 1000여 년이 넘게 이용되었다. 이와 다른 방식으로 검을 패용하는 것은 사산조 이란의 6세기로 추정되는 탁-이-부스탄(Taq-i-Bustan)에 새겨진 샤푸르 3세(Shapur Ⅲ)의 장검에서 확인된다. 이러한 변화는 5세기 후반 무렵, 현재의 아프카니스탄(Afganistan) 북부와 우즈베키스탄(Uzbekistan) 남부 등에 해당하는 박트리아(Bactria)지역을 놓고 패권을 다투던 에프탈과의 접촉을 통해 수용한 것이다.*br* 당시 에프탈의 정치적 판도를 참고하면 계림로의 금제감장단검과 같은 형식인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Kazakhstan) 보로보에(Borovoye) 호수에서 발견된 금제감장보검의 제작지를 박트리아로 좁혀 볼 수 있다. 이는 박트리아 중심으로 발전한 서방계의 금공과 연관 관계를 보이고 있고, 감장의 재료인 흥마노가 박트리아산인 점을 참고하여 내린 결론이다.*br* 에프탈에서 시작된 두 개의 패용구가 달린 검은 소그드(Sogd)와 고구려와 교류에 의해 한반도에 전해진 것으로 이해된다. 이와 관련하여 4세기 중반의 안악 3호분, 5세기 중반의 장천 1호분에 그려진 소그드 출신의 예인들을 주목하였다. 이들은 상인들의 무리와 같이 움직이던 집단으로 생각되어 중앙아시아와 고구려와의 교섭을 반영하는 존재들로 파악하였다. 7세기 중엽 사마르칸트(Samarkand) 아프라시아브(Afrasiab) 벽화에 그려진 고구려 사절단에서 알 수 있듯이, 고구려와 소그드의 꾸준한 관계가 바탕이 되어 사마르칸트에 직접 사신을 보낼 정도의 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아프라시아브 벽화에서 보이는 고구려 사신들이 착용하고 있는 M자형 패용구가 달린 장검은 고구려 유민의 무덤인 다카마츠츠카(高松塚)에서 발견된 P자형과 D자형의 패용구가 달린 장식대도와 비슷한 형태로 추정된다.*br* 마지막으로 계림로 14호분에서 묘주가 두 개의 패용구가 달린 검을 착용하고 있는 의미를 묘주의 무장체계와 관련하여 살펴보았다. 5세기 고구려에 원병을 청하였던 신라에서 개마무사의 존재는 4세기 말부터 확인되고 있다. 생시에 개마무사였던 계림로 14호 묘주가 사용한 주된 무기는 창이지만, 허리에 패용된 단검은 창을 놓쳤을 때 또는 보병들에 의해 밀집되어 창을 쓸 공간의 여유가 없는 급박한 상황에서 사용한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리고 천마층 환두대도에서 확인된 4각형의 쌍각금구는 계림로 금제감장단검과 같이 허리에 패용하여 사용하는 방식이 신라에 수용된 모습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