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A Study on Ceramic Sherds from the Sangju Daepyori Kiln Site (尙州大杓里窯址)
Published: January 2008 · No. 257 · pp. 5-29
Full Text
Abstract
『世宗實錄』「地理志」磁器所는上品4곳, 中品 45곳, 下品 86곳, 품질표시가 없는 4곳 등 총 139곳이 있다. 지금까지의 자기소 연구는 품질에 따라 어떤 종류의 그룻을 생산했는가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 결과 중품자기소 12곳과 하품자기소 13곳이 조사되어 1400년-1430년경의 象嵌ㆍ印花ㆍ귀얄粉靑沙器가 생산되었으며 일부 백자가 제작된 것이 밝혀졌다. 상품자기소는 경기도의 1곳과 경상도의 1곳이 조사되었다. 경기도는 廣州의 樊川里窯址에서 확인된 象ㆍ印花기법의 분청사기, 갑밭에 붙은 白磁片 등과 世宗 7년(1425)의 白磁 精細燔造기록을 제시하여 번천리를 上品磁器所로 본 후 제작활동 시기는 1425년-1440년경으로 추정하였다. 경상도는 高靈의 箕山洞을 상품자기소로 보았으나 구체적인 유물의 양상은 알 수 없다. 다만 高靈白磁에 관한 기록을 통해 高靈縣의 상품백자의 양상을 파악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상품자기소에서는 질이 좋은 백자가 제작되어 왕실에 바쳤다고 이해된다. 그러나 조사된 두 곳의 백자의 양상을 파악할 수 없으며 분청사기의 貢納에 관한 내용도 알 수 없다. 또한 경상도의 尙州지역 상품자기소 두 곳의 연구가 없어 상품자기소의 전체생격이나 지역볕 성격을 규명할 수는 없었다.*br* 본 논문에서는 大杓里窯址에서 收拾된 도자편의 특징을 분석하고 펀년자료와 비교하여 제작시기를 比定하였고, 窯址의 方位에 주목하여 문헌자료를 참고로 『世宗實錄』 「地理志」 尙州牧 中牟縣 楸縣里 上品磁器所가 대표리일 가능성을 살펴보았으며, 대표리요지에서 수습한 분청사기와 백자의 특징을 참고로 상품자기소의 성격을 고찰해 보았다.*br* 대표리의 도자편은 象嵌ㆍ印花ㆍ귀얄기법 등의 분청사기와 無文白磁, 陰刻白磁 등이다. 분청사기와 백자의 제작 시기는 문양양식, 편년자료 등의 측면에서 파악하였다. 분청사기는 상감기법의 〈粉靑象嵌蓮唐草文恭安銘대접 (1400년-1420년)〉과 인화기법의 단독국화문의 〈粉靑印花菊花文恭安府銘접시(1400년-1420년)〉의 예에 따라 대표리의 상감기법인 蓮唐草文ㆍ草文ㆍ重圈文, 無文의 灰靑沙器, 인화기법의 六圓文과 菊花文은 1420년을 넘지 않는다고 보았다. 인화기법의 집단국화문, 귀얄분청사기, 무문백자, 음각백자 등은 〈粉靑印花集團連圈菊花文四耳壺(1424년)〉, 〈粉靑印花德寧府銘集團連圈菊花文대접(1455년-1457년)〉, 〈粉靑귀얄문壺(1454년)〉, “景泰 2年(1451)銘” 發願文과 함께 나온 〈白磁陰刻牧丹文龕〉 등의 예에 따라 1420년경-1450년대로 추정하였다. 窯道具는 鉢形의 甲鉢이 多量 확인되어 良質의 粉靑沙器를 大量으로 제작했다고 여겨진다. 또한 圓形의 硯滴 모양 陶范은 上面, 下面, 側面에 크고 작은 국화문양이 있어 찍는 위치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분청사기에 문양을 찍는 도범의 예는 이번 연구를 통해 처음으로 확인되었다.*br* 『世宗實錄』 「地理志」 尙州牧 中牟縣 楸縣里의 현 위치인 牟東面 龍湖里의 북동쪽인 대표리임을 확인하였다.*br* 대표리에서 수습된 백자편과 분청사기편의 특징을 참고로 상품자기소의 성격을 파악해 보았다. 먼저 〈白磁片〉은 白磁胎土 위에 靑磁 釉藥을 施釉하였으며 이 청자 유약은 〈粉靑象嵌蓮唐草文大?片〉의 유약과 동일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과학적 분석을 통해 대표리 〈백자편〉은 色度ㆍ胎土 등은 백자태토임이 확인되었고, 釉藥은 대표리 분청사기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조선시대 청자 유약과 백자 유약의 비교를 하여 청자유약에 가까움을 확인하였다. 결국 대표리 〈백자편〉은 백자태토 위에 청자 유약을 입혔음을 분명히 알 수 있으며 대표리의 〈상감분청사기편〉과 〈백자편〉은 同一유약을 施釉한 조건에서 燔造되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1420년이 하한인 〈粉靑象嵌蓮唐草文恭安銘대접〉의 예에 따라 〈상감분청사기편〉과 〈백자편〉은 1420년대에 제작되었다고 판단된다. 이는 경기도 廣州牧의 上品磁器所로 추정되는 樊川里의 백자 제작 시기가 1425년임을 참고하면 1420년대에는 대표리 상품자기소에서 백자가 제작된 것은 분명하다.*br* 다음은 상감기법과 인화기법을 사용한 〈粉靑龍文壺片〉이 있다. 龍文은 일반적으로 왕실에 극한되어 사용되던 문양이라는 점으로 볼 때 상품자기소로 추정되는 대표리요지에서 〈용문호〉가 제작되었다는 사실을 통해 상품자기소의 성격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즉 상품자기소의 성격은 왕실공납용 자기를 생산하던 자기소로 추정되며, 태종 11년(1411)에 왕실에서 특정지역인 中牟縣과 특정기명인 花器를 지목하고 관리를 파견하였다는 기록은 이를 뒷받침해 주는 중요한 단서라고 보여진다.*br* 이상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大杓里窯址가 『世宗實錄』「地理志」尙州牧 中牟縣 楸縣里 上品磁器所일 가능성을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문헌기록을 통해 楸縣里가 현재의 대표리라는 점 둘째, 1400년부터 1450년대에 걸쳐 제작된 분청사기와 백자가 수습되었고 良質의 분청사기를 제작하는 데 사용한 甲鉢이 대량으로 확인된 점 셋째, 『世宗實錄』「地理志」上品磁器所인 廣州, 高靈 등과 같이 尙州에서도 白磁가 생산된 것이 확인된 점이다. 그러나 尙州에서 粉靑沙器가 王室用으로 제작된 것은 상주지역만의 특징인지 廣州와 高靈의 상품자기소에도 해당되는지는 앞으로의 연구를 통해 밝혀지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