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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arch Article

A Study on Iconography of the Nativity of Sakyamuni in the Joseon Dynasty

鄭于澤

Published: January 2006 · No. 250·251 · pp. 213-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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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석가여래의 출처소생을 여덟 장면으로 압축 묘사한 釋迦八相圖는 유일 교주라는 성격 때문인지 시기, 국가, 민족 그리고 종파에 관계없이 신봉된 유일의 불교도상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경우도 석가팔상도가 고려시대에도 제작되었을 것으로 짐작하지만 현재 남아 있는 작품으로 볼 때, 조선조 전기의 『釋譜神節』판화가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근년 일본에서 조선조 초기로 짐작되는 〈석가탄생도〉가 공개되어 적지 않은 관심을 끌었다.*br* 本岳寺의 〈석가탄생도〉는 등장인물의 수, 모티프의 배치에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도상의 기본 구성과 본질은 『釋譜祥節』석가팔상판화의 하나로, 석가탄생을 묘사한 〈비람강생상〉과 같다. 이러한 동일성에 착안하여 살펴본 결과 本岳寺 〈석가탄생도〉는 『釋譜祥節』을底本으로하여 지었다는 『月印千江之曲』에 도상학적 근거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本岳寺 〈석가탄생도〉는 우선, 경전의 繪畵化 탐구에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자료이다.*br* 本岳寺 〈석가탄생도〉의 제작시기는 이중채색법, 구름의 묘사법 등 표현기법과 산수화를 비롯한 구성요소의 시기성 그리고 왕세자의 탄생과 같은 역사적 정황을 고려하여 볼때 조선조 초기,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成宗代 초반인 15세기 후반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따라서 이 그림은 아주 귀한 조선조 초기 불화의 하나로 당시의 불화 양상을 짐작하는데, 나아가가 궁정화풍 불화의 일면을 고찰하는데 더없이 귀중한 자료로 생각한다.*br* 『석보상절』 판화의 석가탄생도상은 약간의 변용은 있었지만 本岳寺本과 같은 채색 불화에 계승된 이래 16세기의 大德寺本을 거쳐 華光寺(1692), 龍門寺(1709) 등 조선조 후기의 불화에 계승되었다. 또한 이 탄생도상은 18세기 이후 석가팔상도가 적극적으로 그려질 때 송광사, 통도사 그리고 해인사 본에서 볼 수 있듯이 “비람강생상”의 구성요소의 일부로 수용되기도 하였다. 물론, 조선조후기의 불화들은 『석보상절』의 판화를 직접 참고하였다기보다는, 先行의 도상을 취사선택하였을 것으로 짐작하는데, 이들을 통하여 계승과 수용 과정에서 동일 도상이 어떻게 변용되는가를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br* 마지막으로, 本岳寺〈석가탄생도〉는 일본에 수용된 이후 小松寺本, 法然寺本 그리고 海岸寺本 등을 통하여 알 수 있듯이, 版本이나 版本彩色 또는 肉筆畵로 재생산되어 상당 기간 넓은 지역에 유포,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특정 주제의 불화도상을 목판으로 만든다는 것은 그만한 수요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곧 그에 부합하는 신앙이 존재하였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br* 本岳寺의 〈석가탄생도〉는 한반도는 물론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에서 일본에 전래된 불교도상 가운데 이 그림만큼 모사본이 많이 제작되고 넓게 유포된 도상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불화가 일본 불화 및 불교의식에 미친 영향을 실물로 입증한 자료라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한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