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A Study on the "Draft History of Joseon Architectural Art" by U-hyeon Ko Yu-seop
Published: January 2006 · No. 249 · pp. 207-235
Full Text
Abstract
이 논문은 일제강점기에 한국인으로서 유일하게 건축사 연구에 몰두했던 又玄 高裕燮의 遺稿 ‘朝鮮建築美術史草稿’(이하 문맥에 따라 『草稿』혹은 ‘草稿』’로 줄여서 표기함)의 연구사적 의의를 밝힐 목적으로 작성되었다. 일본인들의 독무대였던 유적 조사, 미술사, 건축사 분야에서 고군분투한 끝에 독보적인 업적을 이룩한 又玄의 업적 가운데에서 젊은 날의 초기 저작인 ‘草稿’가 차지하는 위상을 네가지 측면에서 검토하였다. 즉, 집필동기, 서술체재와 내용, 건축미술사의 지향점, 우현이 찾아낸 조선건축의 특색 등이 그것이다.*br* 먼저 ‘草稿’의 집필동기가 關野 貞의 『朝鮮美術史』(1932)와 藤島亥治郞의 『朝鮮建築史論』 (1930)을 극복하고 조선인에 의한 조선건축사를 쓰기 위해서였음을 밝혔다. 이 가운데서도 식민지배 시기에 충실하게 제국주의 문화정책의 앞잡이 노릇을 한 關野 貞이야말로 又玄이 가장 먼저 說破하지 않으면 안 될 대상이었다.*br* 둘째, ‘草稿’의 서술체재와 내용이 關野 貞의 『韓國建築調査報告』와 『朝鮮美術史』, 藤島亥治郞의 『朝鮮建築史論』 등을 의식하여 쓰여졌으며 목차도 그러했다. 又玄은 두 일본인 학자의 저서를 모두 읽고 전자에게서는 시기구분, 후자에게서는 총론을 쓰는 데 도움을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又玄은 시기구분에서 樂浪時代를 빼고 大韓時代를 넣음으로써 植民史觀을 벗어났으며, 총론에서는 환경결정론적 논리를 벗어던졌다. 藤島亥治郞 ‘朝鮮建築史의 地位’를 ‘일본건축사 연구의 보조물’로 치부한 데 대항하여, ‘朝鮮建築의 地位’와 ‘朝鮮建築의 特徵’을 새롭게 편성하기도 하였다.*br* 셋째, 又玄은 미술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건축만을 서술하되 건축 유물이 남아 있지 않은 경우라도 후대 건축의 계통과 관련해서는 간단하게 서술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집필에 임하였는데, 그의 건축미술사가 목표로 삼은 지향점은 ‘조선건축의 특색’을 찾아내는 일이었다.*br* 넷째, 又玄은 조선건축의 미적 특색을 서술하기 위하여 건축을 ‘미적 대상’으로 삼고 ‘미적 가치’, ‘미적 효과’, ‘미적 관계’, ‘미적 구상’, ‘미적 생명’ 등을 읽어내려고 노력하였다. 작품의 미적 효과를 ‘맛’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는 점이 주목되는데, 맛깔을 묘사한 형용사를 일회적으로만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특징을 다양하게 형용해 보려는 노력의 산물일 뿐 아직 조선건축의 미적 범주를 가리키는 말로 개념화된 것은 아니다. 이렇게 해서 찾아내고 규정한 朝鮮建築의 特色을 ‘朝鮮心’, ‘朝鮮趣味’, ‘朝鮮民族의 心理’에서 나온 ‘朝鮮色’이라고 말하고 있다.*br* 건축미술의 연구를 통하여 조선미술의 특색을 찾아나간 又玄은 難攻不落의 城砦로 보였던 關野 貞과 藤島亥治郞의 저술을 어느 정도 격파하였다. ‘朝鮮建築美術史草稿’의 집필을 통하여 植民 史觀에 입각한 實證主義的 朝鮮建築史(又玄의 표현에 따르면 ‘古物調査臺帳’)를 극복할 ‘美學的 基礎’를 마련한 又玄은 훗날 塔婆硏究에서 보듯 樣式論으로도 그들을 극복하였다. 광복 60돌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한국건축사 연구자는 ‘日本人의 朝鮮建築史’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朝鮮建築美術史草稿’에서 싹을 티운 ‘韓國建築美術史’의 완성을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