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Hair and Eyes
Published: January 2005 · No. 248 · pp. 95-129
Full Text
Abstract
조선시대 초상화는 조선시대의 성리학적 시각 문화를 대표하는 그림 가운데 하나이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초상화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리학의 독특한 祭儀觀과 政敎觀, 修己觀, 造形觀 등을 통해 초상화의 성격과 의미를 매우 폭넓게 이해하는 문화사적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고 단순히 양식사적으로 좁게 접근할 경우, 조선시대 초상화는 그 역사적 실상과 실존적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br* 그동안 조선시대 초상화의 祭儀的 명제인 ‘一毫不似’論을 造形的 명제처럼 잘못 읽어 조선시대 초상화의 조형적 특징이 마치 자연주의적 사실주의에 있었던 것처럼 편향되게 해석했던 것은 그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조선시대 초상화의 독특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제의적 맥락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조형적 맥락도 제대로 읽지 못한 이중의 착시였다고 생각된다. 오히려 ‘일호불사’론의 진정한 미술사적 해석의 핵심은 조선 중기의 17세기에는 御眞을 그리는 전통까지 소멸되어 버릴 정도로 조산 초중기의 초상화에 엄청난 祭儀的 억압으로 작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올바로 이해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조선 초중기의 초상화가 주로 政敎的 성격이 강한 功臣像 중심으로 발달하고 상대적으로 제의적 맥락이 강한 일반 士人像이 그다지 발달하지 않았던 것도 이러한제의적인 억압과 적지 않은 연관성이 있었다고 생각된다.*br* 그러나 17세기 후반과 18세기 초반의 숙종대를 전후하여 성리학이 더욱 심화되고 토착화되며 제의적인 맥락과 수기적인 맥락에서 초상화의 의미가 더욱 긍정적으로 인식되게 되자, 이러한 ‘일호불사’론의 제의적인 억압에서 벗어나 다시 어진도 그려지고 일반 士人像도 더욱 널리 그려지기 시작했으며, 18세기 眞景時代의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조형 문화의 발달괴 함께 매우 사실적인 초상화가 발달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터럭 한 올이라도 같지 않으면 곧 다른 사람(一毫不似, 便是他人)”이라는 ‘일호불사’론의 조형 정신 때문에 조선 후기에 사실적인 초상화가 발달했던 것처럼 해석하는 것은 이중의 착시라고 생각된다. 조선 후기 초상화는 이와 달리 사실적인 조형관과 방법론이 발달할 수록 오히려 단순한 자연주의적 사실주의를 넘어서 주인공의 정신과 마음, 성격, 기질, 기분 기색까지 표출하고자 하는 거의 심리학적 사실주의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높은 수준과 깊은 경지를 지향했다. 天理大學 소장의 《正祖御題近臣肖像帖》과 正祖의 『日得錄』에 기록된 ‘三毛’論은 이를 매우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조선 후기 초상화의 조형적인 핵심은 程?가 제의적 명제로 제기했던 ‘一毫不似’論, 곧 死者의 精神(鬼神)을 상징하는 ‘한 오라기의 털’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산 자의 정신과 마음을 상징하는 ‘傳神寫照’論의 ‘눈’, 그리고 이러한 정신과 마음을 더욱 심리적 차원의 조형적 상징으로 표상해주는 ‘三毛’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