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The Literary and Artistic Activities and Calligraphy of Prince Anpyeong, Yi Yong
Published: January 2005 · No. 246·247 · pp. 73-115
Full Text
Abstract
安平大君 李瑢(1418-1453)은 36세의 짧은 생을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세종ㆍ문종연간의 詩文ㆍ書畵ㆍ佛事 방면에서 뚜렷한 자취를 많이 남겼다. 그는 이러한 文藝活動 중에서도 특히 元代의 유명한 문인서화가 松雪道人 趙孟?(1255 -1322)의 서풍을 깊이 터득하여 왕성한 서예 활동을 벌였다.*br* 먼저 詩文 방면에서 이용은 1443년 世宗의 명으로 『杜甫詩註』의 편찬을 총괄했고, 1447년에는 여러 문사와 함께 唐宋八家의 시를 골라 『唐宋八家詩選』 10권을 편집ㆍ간행하였다. 또 白居易, 梅堯臣, 王安石, 黃庭堅 등의 詩選을 편간하고, 집현전 학사를 비롯한 당대의 文士들과 잦은 詩會를 통해 이를 실천하는 등 唐ㆍ宋代 詩風을 중심으로 中國詩學을 이끌었다. 더욱이 《瀟湘八景詩帖》, 《夢遊桃源圖卷》 등과 같이 세종연간을 대표하는 詩文書畵가 이루어지는 중심에 바로 그가 있었다.*br* 다음 書畵 방면에서 이용은 신숙주의 「畵記」에 적혀있듯이 중국 서화를 널리 수장하여 당대를 대표하는 서화수장가로서 활동했으며, 이를 安堅을 비롯한 화가들에게 제공하여 그들의 수준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등 서화계의 리더로 활약하였다. 특히 그가 소장했던 趙孟? 行書 26점과 鮮于樞 草書 6점은 元代 서풍의 진수를 우리나라에 전파시키는 원천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 1443년에는 명나라 왕자 朱有燉이 편간한 《東書堂集古法帖》(1416)을 모방하여 《匪懈堂集古帖》을 출간했다. 이것은 조선시대 법첩의 효시가 되었으며 뒤에 《海東名述》과 같은 순전한 우리나라 법첩이 간행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또 이용은 조맹부의 필적으로 《眞草千字文》, 《證道歌》를 간행하는 등 法書의 전파에 있어서도 매우 적극적 자세를 보였다. 이밖에 그는 궁궐 옆에 불당을 세우고 大慈菴 등의 왕실 원찰을 중심으로 佛書를 간행하며 불상과 사경을 조성하는 등 왕실에서 발원한 여러 佛事에도 앞장을 섰다.*br* 이용은 1453년의 癸酉靖難에 따라 정치적으로 제거되었지만, 이러한 문예활동으로 인해 그의 學藝는 賜死된 뒤에도 계속 찬미되었고 후대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실제 조선왕조 전반기 내내 그의 영향을 받지 않은 서예가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특히 成宗을 비롯한 왕실인사에게 미친 영향은 절대적이었다. 그는 王義之ㆍ조맹부를 중심으로 元代 復古主義의 정수를 터득하여 元ㆍ明代는 물론이요 조선의 어느 松雪體 서예가도 미칠 수 없는 높은 기량을 이루었다. 이런 점에서 그의 서예 방면에서의 성과는 그의 문예활동과 연계되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켰다고 할 수 있다.*br* 다만 서예가의 개성을 논할 때 이용의 글씨에서 이쉬운 감을 떨칠 수 없다. 만약 그가 정변에 희생되지 않고 보편적 생을 누렸다면, 그의 글씨는 보다 뚜렷한 독자성을 보였을 것이며, 후세에 미친 영향의 폭도 더욱 넓었을 것이다. 앞으로 이용의 서예에 대한 깊은 논의가 이루어지길 기대하며, 특히 그의 전칭작에 대한 상세한 분석과 그의 서풍이 유행된 양상에 관해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