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The Portrait of Nongam Yi Hyeon-bo and the "Diary of Portrait Recopying"
Published: January 2004 · No. 242·243 · pp. 225-254
Full Text
Abstract
聾嚴 李賢輔(1467-1555)는 16세기 전반에 활동한 士林派 문인이다. 경상북도 안동부 예안현의 士族 출신인 이현보는 관리로서 현달한 중년기로부터 늘 귀거래를 꿈꾸었다. 그는 실제 여러 번 노부, 노모의 공양을 위하여 외직을 자청하여 지방직에 종사하였지만, 그의 귀거래가 실질적으로 구현된 것은 76세 때였다. 늘그막에 귀향한 이현보는 안동의 汾川 기슭에 자리잡고 江湖의 유유자적한 생활을 추구하며 후학을 양성하였다. 이현보가 말년에 지은 「漁父詞」는 사림들 간에 江湖歌의 출발점이 되었고, 이황의 「陶山十二曲」과 함께 남인들 간에 전수되었다. 국문학계에서는 이현보와 어부사에 대한 논의가 꾸준히 이루어져 왔는데, 미술사분야에서는 이현보에 대하여 연구된 바가 거의 없다. 필자는 조선 초의 실경을 연구하면서 이현보 종가에 전해진 〈銀臺契會圖〉를 발굴하여 소개한 바가 있다. 이번 글에서는 이현보의 영정과 영정 개모본, 「影幀改摹時日記」, 《具慶帖》등을 중심으로 조선 초기 선비영정의 도상과 양식, 영정이모에 관하여 정리하였다.*br* 현재 이현보의 영정은 원본과 이모본 두 본이 전해지고 있다. 이 영정들은 세 가지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하나는 두 본 모두 제작시기와 화가, 제작동기 등이 비교적 분명하게 확인된다는 점이다. 이현보 영정의 원본은 경상도관찰사로 재임하던 1536년, 70세 때 제작된 것이고, 화가는 畵慣 玉峻이 그렸다고 전해지고 있다. 「영정개모시일기」에 의하면 영정의 개모본은 1827년에 한양에서 활동하던 小塘 李在寬을 초빙하여 그리게 한 것이다. 두 번째 의미는 영정이 낡아 개모하게 되었을 때 그 과정을 낱낱이 기록한 「영정개모시일기」가 전해지고 있어 영정에 대한 유교적 인식과 상징성, 이모본의 제작 공정을 확인케 한다는 점이다.*br* 마지막 의미는 이현보 영정의 도상과 관련하여 찾을 수 있다. 조선시대에 제작된 문인 영정은 공신도상과 일반 사대부상으로 분류되고, 일반 사대부상은 다시 公服像과 便服像으로 나누어진다. 그런데 이현보상은 그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특한 도상을 보여 준다. 영정에 나타나는 이현보는 公服의 일종인 時服을 입고, 평상시에 쓰는 圓頂笠를 쓰고 있다. 또 왼손은 일품 이상의 문관이 착용하는 犀帶에 대고 있으며 오른손은 불교적인 연원을 가진 佛子를 들고 있으며, 그 앞에는 經床이 놓여 있는 등 특이한 도상을 하고 있다. 이러한 도상의 특수성은 이현보가 사림파 문화와 예술이 확립되기 이전과 이후를 연결짓는 과도적인 인물이라는 사실과 상관이 있다. 즉, 그는 이전 훈구파 문인들과 구별되는 사림파의 문학과 회회를 모색하였으며, 그의 이러한 시도가 이후 사림파 문화가 정착되는 데 일조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의 영정에 반영된 불교적 경향과 도상, 양식의 특수성은 화가가 화승이었다는 사실 이외에 사림파 문화가 정착되기 이전 과도기로서의 특정을 드러내고 있다.*br* 이 글에서는 이현보 영정의 도상과 양식을 위와 같이 정리한 뒤, 이어 「영정개모시일기」 가운데 중요한 내용을 번역하여 영정개모와 관련된 과정과 영정을 그런 화가와 재료 등을 살펴보았다. 일기에 기록된 小唐 李在寬이 秋史 金正喜에 의하여 추천되었다는 사실과 이재관의 영정 이모과정, 영정 개모의 절차와 의례, 영정의 재료 등에 관한 여러 사실들은 조선시대 영정을 이해하는 데 많은 단서를 제공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