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불석제 불상의 조성과 이운을 통해 본 경상 지역 조선 후기 불상 조성의 일면
대한불교조계종
발행: 2024년 1월 · 323호 · pp. 6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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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조선 후기 불석제 불상이 유행하면서, 사찰과 조각승들은 각각 새로운 양상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는 재료의 운반이 어렵고, 산지가 한정되었던 불석의 특징에서 기인한다. 때문에, 기존의 목조, 소조불이 사찰이라는 한 장소에서 조성된 것과 대조적으로, 불석제 불상의 경우 제작처와 봉안처 간에 공간적인 거리가 생겨나게 되었다.*br* 불석제 불상의 조성 장소를 지칭하는 ‘佛像所’, ‘造像處’ 등의 용어는 불석 산지 인근에 불상을 조성하는 장소가 존재하였음을 함의한다. 이로 미루어, 불석제 불상의 경우 불상의 조각까지를 경주 인근의 공방에서 완료하고, 이후 봉안처로 이운하여 점안 의식을 행하고 불전에 봉안하였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러한 공간적 간극이 발생함에 따라, 불석제 불상의 조성에서는 ‘증명’의 역할이 상당부분 한정되는 반면, ‘화원’의 역할은 원재료의 수급부터 조각, 불복장의 납입까지 확대되는 양상이 나타난다. 또, 목조불의 조각승이 불상뿐 아니라 대좌, 불패 등의 제작에 전체적으로 관여한 반면, 불석 조각승의 경우는 오직 불상의 조성에만 집중하는 경향 역시 확인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