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베트남 阮朝(Nguyễn) 明命帝(r. 1820-1840)의 〈孝陵〉 연구
서강대
발행: 2021년 1월 · 309호 · pp. 209-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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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와 달리 베트남 지역의 전통 왕조는 한자를 사용하고 중국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유학을 국시로 통치 체제를 구축하였으며, 황릉, 혹은 왕릉을 지어 국가적 정통성과 권위를 확립했다. 베트남의 마지막 전통 왕조인 응우옌 황조의 황릉은 조선과 중국 명청의 왕릉·황릉과 달리 베트남 시대의 변화가 즉각적으로 반영되며, 제도와 능 조성에 있어 비교적 유연하여 각 황릉마다 황제의 개성이 부여된다는 특징이 있다.*br* 응우옌 황조의 황릉 제도의 기틀을 마련한 황제는 2대 明命帝(r.1820-1840)이다. 1대 嘉隆帝(r. 1802-1820)가 제도와 문물을 갖추어 기반을 마련하였으며, 민망제 통치기에는 응우옌 황조의 전성기를 맞이하여 거대해진 영토를 통합하기 위하여 강력한 大南帝國秩序를 표방하였다. 이를 위해 儒敎를 국가 이념으로 채택하여 통치체제를 마련하였으며, 국가의 가장 큰 행사인 喪葬禮와 황제의 무덤인 皇陵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br* 본 논문에서는 민망제가 구현한 국가적 이상과 그 형성 과정을 皇陵의 제도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사료를 통해 응우옌 영주기의 능을 검토하여 응우옌 황릉의 원류를 탐구하였고, 그 시원을 이룬 가륭제의 〈천수릉〉을 비교 파악하였다. 민망제는 이를 계승하면서 중국 황릉 제도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였고, 〈孝陵〉을 통해 응우옌 황릉의 제도적 완성을 이루었다. 그러나 명청 황릉의 제도를 수용하면서도, 베트남식으로 변용하여 베트남化된 황릉 제도를 성립하였다. 이러한 황릉 제도는 국내외 격변하는 응우옌 황조의 역사 속에서도 계승되어 다른 국가에서 전례를 찾기 힘든 독특한 문화 현상을 형성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