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1950년대 후반 북한미술의 동유럽전시와 민족 미술의 형성
명지대학교
발행: 2020년 1월 · 305호 · pp. 109-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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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1950년대 후반은 스탈린 사후 소련의 친미반전 노선의 여파로 동유럽 위성국들에 민족주의가 대두되고, 중 · 소 이념분쟁이 시작되면서 사회주의권의 권력재편이 시작된 시기였다. 한국전쟁 이후 경제적 복구가 절실했던 북한은 1950년대 후반 소련 · 중국과 등거리외교를 유지하는 한편 동유럽과에로 외교적 돌파구를 찾음으로써 경제원조 채널을 다양화하고 외교적 균형을 이루어 나갔다.*br* “정치가 뚫고 들어가기 힘든 곳도 문학예술은 뚫고 들어 갈 수 있다”는 문화우선 정책을 폈던 북한은, 동유럽과 문화협정을 체결하고 동유럽 각국에 미술품을 보내어 전람회의를 조직하고 북한 미술가들을 파견하였다. 대표적인 전시로는 1957년과 1958년에 폴란드, 루마니아, 불가리아, 체코슬로바키아 등 동유럽 4개국에서 열렸던 《조선미술전람회》와 1959년 독일, 헝가리에서 개최된《조선조형예술전람회》를 꼽을 수 있다. 출품작들은 소재면에서는 국제적 원조 하에 안정을 찾아가는 북한의 모습을 시각화하였으며, 금강산, 묘향산, 모란봉 등 자연풍광을 정치적 우의를 제거하고 서정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조선적 특징을 강조하였다.*br* 북한은 유화보다 수묵화를 강조했다. 이팔찬, 이석호, 지달승, 김용준 등 전통적이고 사의적이기법을 사용한 작품들을 출품하여 ‘전통에 기반한 사실주의 화풍’이라는 높은 평가를 얻어냈다. 유화의 경우 1950년대 전반에 유행했던 소련식 화풍보다는, 간결한 구도와 밝은 채색 등을 통해 북한식으로 변모된 유화를 새롭게 선보였다.*br* 북한 미술가들의 동유럽 체험은 도판으로만 접했던 ’유럽 중세미술‘을 폭넓게 살펴볼 기회를 제공했다. 또한 북한화가들이 각국의 미술관을 관람하면서 접했던 19세기로부터 20세기 초 동유럽사실주의 작가들이 구사한 민족적 양식은, 유화의 민족화를 위해 고민하던 당시 북한화가들에게 자극제가 되었다. 이는 1950년대 전반까지 중시되던 소련식 사회주의사실주의 화풍, 나아가 러시아 이동파회화의 화풍, 그 너머에 존재하는, ‘원형’으로서의 사실주의 미술형식에 대한 안목을 제공했고, 사실주의 화풍을 유럽의 미술사 내에서 객관화하고 내면화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