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 1418~1453)의 인물됨과 문화적 기여
서울대학교
발행: 2018년 1월 · 300호 · pp. 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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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 1418~1453)은 세종대왕(世宗大王, 재위 1418~1450)이 즉위한 1418년에 대왕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1453년 한 살 위인 친형 수양대군에 의해 사사되기까지 불과 35년간의 짧은 삶을 산 왕자이다. 그는 시·서·화에 모두 뛰어난 삼절(三絶)이었을 뿐만 아니라 음악에도 장했던 예술가이자 후원자였으며, 육경(六經)에 통달한 학자이자 각종 불사(佛事)를 주관했던 불교전문가이기도 하였다. 학예일치사상(學藝一致思想)을 몸소 적극적으로 실천에 옮긴 인물이었다. 그는 만권의 도서를 지녔던 장서가이자 방대한 양의 고대 중국 서화를 모은 서화수집가였다. 이러한 수집품들이 안견과 같은 거장을 키우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을 것임은 쉽게 짐작이 된다.*br* 안평대군은 대부분의 문화활동을 단독으로 하기 보다는 성삼문, 박팽년, 신숙주, 이개 등 집현전 학사들을 비롯한 주변의 뛰어난 문사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참여케 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학예일치의 경지를 이루고 문화발전에 크게 기여케 하였다. 안평대군은 일체의 각종 예술적, 학술적 행위와 행사를 주도하고 총괄하였다. 이처럼 안평대군은 세종조의 문화를 발전시키고 융성케 하는데 가장 혁혁한 기여를 하였던 것이다.*br*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안평대군에 대한 연구는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문학과 서예 분야에서 한두 편의 논문들이 나와 있고, 금년(2018)에 심경호교수가 낸 역저가 거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필자는 안평대군에 관한 연구의 방향을 설정하고 목표를 잡아보기 위해 목차에서 제시한 바와 같이 그의 인물됨을 우선적으로 짚어보고, 그의 문화적 기여를 문학, 서예, 회화, 조원(造園) 등 예술 각 분야에서의 활약과 공헌을 고찰한 다음, 편찬과 불사(佛事) 등 학술적 기여를 살펴보았다. 총론적, 포괄적 연구를 시도해보았다고 하겠다. 앞으로 이들 각 분야들에 대한 각론적 심층적 연구가 요구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