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통일신라시대 화엄계 불상의 도상과 교의적 해석
문화재청
발행: 2017년 1월 · 294호 · pp. 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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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통일신라시대의 화엄계 불상은 촉지인, 지권인, 시무외·여원인의 도상 형식으로 구분된다. 먼저 화엄계 촉지인 불상으로는 부석사 무량수전 소조불좌상과 석굴암 본존불상이 있다. 부석사 무량수전 소조불좌상은 고려전기에 제작되었지만 의상이 부석사를 창건할 당시 제작한 주존을 模本으로 조성되었으며, 석굴암 본존불상은 의상계 화엄종 승려인 표훈과 신림이 조영을 주도하였다고 추정된다. 이들을 볼 때 통일신라시대 불교계의 주축이던 의상계 화엄종에서는 촉지인 불상을 주존으로 신앙하였다고 판단된다. 의상의 화엄불신론에 입각해볼 때 촉지인 도상은 『60화엄경』의 법신, 즉 석가모니불뿐만 아니라 아미타불, 노사나불을 한 몸 안에 아우르고 있는 華嚴一乘의 존격을 나타내고 있다고 이해된다. 한편 통일신라시대에는 촉지인 불상이 널리 유행하는데, 의상계 화엄종의 융성이 그 유행의 배경 중에 하나로 작용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br* 다음 화엄계 지권인 불상 예로는 석남사 비로자나불상과 보림사 비로자나불상이 있다. 석남사 비로 자나불상의 조상기에 존명을 밝히고 있어서 『80화엄경』의 법신임을 알 수 있다. 반면 보림사 비로자나불상도 지권인을 결하고 있지만 조상기에는 『60화엄경』의 법신인 노사나불로 명기되어있다. 이를 볼 때, 통일신라시대에는 노사나불이나 비로자나불의 도상적인 구분이 분명하지 않고 단지 화엄법신불의 도상으로 이해했다고 여겨진다. 한편 지권인 불상은 8세기 중반에 처음 출현하지만 9세기 중반부터 유행한다. 그런데 8세기 중반에 이미 법신 비로자나불의 개념을 제시하는 『80화엄경』이 전래되었고 화엄종도 융성했던 반면 9세기 중반에는 선종이 전래되는 등 불교계의 주도세력이 변화하였다. 따라서 지권인 불상의 유행시점을 불교사적으로 파악해보면, 『80화엄경』을 소의경전으로 하면서 지권인 불상을 주존으로 신앙했던 화엄종 계파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이해된다. 즉 통일신라시대에는 『60화엄경』에 근거하는 화엄사상적 전통이 고수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br* 그리고 화엄계 시무외·여원인 불상으로는 삼화사 철조노사나불상이 있다. 시무외·여원인 노사나불상은 주변국가에서도 조성되었는데, 唐代 龍門石窟 奉先寺洞의 주존이나 奈良시대 東大寺 大佛殿의 주존도 같은 도상이다. 따라서 시무외·여원인 노사나불상 도상은 동아시아 불교문화권에서 공유되었다고 추정된다. 한편 의상의 제자들이 설명하는 『일승법계도』의 상징성에 대한 내용이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시무외·여원인 금동불입상의 도상특징이 시무외·여원인 노사나불상의 도상적인 전거와 일맥상통하며, 실상사 철조불좌상과 《성주사비》에 전하는 성주사의 주존도 시무외·여원인 노사나불상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시무외·여원인 노사나불상은 신라에서 늦어도 8세기 전반부터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9세기 후반의 삼화사 철조노사나불상은 그러한 계통에 속한다고 파악된다.*br* 이상의 고찰을 통해 통일신라시대 불교조각사의 국제성과 독자성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