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초록
Research Article

중국 〈文姬歸漢圖〉와 〈明妃出塞圖〉의 조선유입과 수용의 의미

문선주

홍익대학교

발행: 2015년 1월 · 287호 · pp. 2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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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논문은 조선시대 고사여인도인 〈文姬歸漢圖〉와 〈明妃出塞圖〉가 중국으로부터 어떠한 작품들이 유입되었고 이를 조선 문인들이 어떻게 수용했는지 파악하는 데 목표가 있다. 이를 통해 시각적 이미지가 정치, 사회적으로 어떻게 이용되는지 파악하고 열녀도와 미인도의 성격을 동시에 가지는 고사여인도의 특징을 밝히려 한다.*br* 〈文姬歸漢圖〉, 〈明妃出塞圖〉의 주인공인 채문희와 왕소군의 경우 한 여인은 漢을 떠나고, 한 여인은 漢으로 돌아오는 인물로서 서로 연결되면서도 상반된 상징성을 가질 수 있다. 조선시대 유입 제작된 〈문희별자도〉, 〈명비출새도〉는 송원대의 작품이 많았고 작품에 대한 인식도 송원대 사상의 영향이 많이 드러났다. 예를 들어 조선 문인들은 〈문희별자도〉를 화이론에 근거하여 수용하였고 생명보다 소중하게 정절을 지켜야한다는 송대 주희, 정이의 정절관을 따라 채문희를 평가하였다. 또한 조선 문인들은 〈명비출새도〉의 왕소군을 송대 구양수가 해석한 것과 같이 그녀를 정치적 희생양이자 박명한 미인으로 해석하였다. 그들은 왕소군을 통해 황제가 알아주지 않는 그녀의 “미모”를 왕이 알아주지 않는 자신들의 “능력”으로 치환시켜 자신들의 정치적, 신분적 소외를 투영시켰다. 화이론적으로 해석되었던 〈문희별자도〉는 18세기 이후 북학의 확산으로 그 의미가 희석되어 작품의 제작 및 감상이 거의 중단된 듯하고, 〈명비출새도〉는 왕소군의 미모와 운명에 매혹된 조선 문인들에 의해 전시기에 걸쳐 수용, 감상되었다.*br* 고사여인도 수용에 드러난 송대사상의 영향은 18세기 중국 서화시장에 송원대 그림이 많이 유통되었던 현실적인 이유도 있지만 조선 사회가 다양한 사상이 출현했던 명청대와 달리 양란이후 송대 성리학이라는 단일한 사상을 중심으로 체제를 강화시키고자 했던 경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br* “고사”의 측면에서 특별한 시기 정치를 반영하여 정치적으로 해석되었던 〈문희별자도〉는 현실정치의 변화에 따라 작품의 운명도 함께 사라졌다. 반면에 포괄적인 의미에서 정책비판의 용도로 활용되었던 〈명비출새도〉는 조선 전시대에 걸쳐 생명력을 지녔다. 이처럼 고사여인도는 정절과 미모를 다루기 때문에 열녀도와 미인도의 중간적 성격을 지니면서도 당대의 정치적 현실을 반영하는 복합적 성격을 드러냈다.
키워드: 고사여인도(故事女人圖paintings of women in old tales)미인도(美人圖paintings of a woman of beauty)고사여인(故事女人woman in old tales)왕소군(王昭君Wang Zhaojun)왕장(王嬙Wang Qiang)채문희(蔡文姬Cai Wenji)채염(蔡琰Cai Y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