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초록
Research Article

海夫 卞持淳과 19세기 전반 동래 지역 화단

이성훈

부산근대역사관

발행: 2013년 1월 · 278호 · pp. 97-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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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해부(海夫) 변지순(卞持淳, 1780년 이전~1831년 이후)은 김홍도(金弘道, 1745~1806년 이후)의 화풍을 위주로 하여 산수·화조 등 여러 장르의 회화에 뛰어난 솜씨를 발휘했던 여항 문인화가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그는 경상도 동래 출신으로 오위장(五衛將) 등의 중앙의 무반직(武班職) 및 동래부 중군(中軍) 등의 동래 지역의 상급 무임직(武任職)을 역임했던 무관이었다. 시인으로서 그의 활동이 두드러지는데, 홍현주(洪顯周, 1793~1865), 홍길주(洪奭周, 1774~1842), 조인영(趙寅永, 1782∼1850), 박영원(朴永元, 1791~1854) 등 서울의 벌열 가문 인사들로부터 높은 시평을 받거나 그들과 함께 시회를 벌인 일이 특기할 만하다.*br* 조선시대 변지순을 화가로서 평가한 글은 거의 없지만 현재 40여 점의 작품이 그의 것으로 전하고 있다. 이들 작품은 변지순이 조선후기에 크게 유행했던 단원화풍과 남종화풍을 바탕으로 활발하게 회화 활동을 펼쳤음을 보여준다. 개인소장 ≪화첩≫중 <매화도>는 김홍도의 <노매도(老梅圖)>를 거칠고 분방한 그만의 필치로 그린 작품이다. 그리고 동일 화첩 중 <산수도(제8면)>는 산뜻한 색채와 활달한 필치로 사의성(寫意性)을 짙게 표출시킨 그림이다. 현재까지 조선 후기에 활약한 지방 출신 화가로서 변지순에 비견될 수 있을 정도의 화격(畵格)을 갖춘 이가 거의 확인되지 않는 점에서 화가로서 그의 위치를 높게 평가할 수 있다. 변지순이 문화적 낙후지역이라 인식되던 변경지역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중앙 화단의 여러 화풍을 수용하여 그만의 개성적 회화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은 중앙으로 진출하여 김홍도·강이오 등의 화가, 홍석주·홍길주 등의 벌열 가문의 인사들과 교류 관계를 맺고, 박기수 등 동래를 방문한 중앙의 주요 인사들과 친분 관계를 유지하며 이들로부터 직간접적으로 당대 회화의 조류나 경향에 관한 정보를 꾸준히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이다.*br* 변지순은 양식적으로 변지한(卞持漢), 김달황(金達晃) 등 동래 지역에서 활동했던 화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변지순은 동래에서 향임직 및 무임직을 두루 역임했던 박주연(朴周演, 1816~1872)이 사용한 ‘반창명명(半窓明明)’인과 ‘고우금운(古雨今雲)’인의 두 과(顆)의 도인(圖印)과 동일한 문구(文句)·서체(書體)의 인장을 사용했다. 부산지역의 일부 화가들의 작품들에서도 종종 확인되는 이러한 사례는 변지순이 지역 화단의 일원으로서 활약했음을 분명히 시사한다. 일정 수준 이상의 화격을 갖춘 지방 화가들의 존재가 아직 많이 밝혀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지역 화가 변지순의 존재는 조선후기 지방 회화의 성격과 규모를 규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초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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