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숙종대 역사고사도 제작과 〈謝玄破秦百萬兵圖〉의 정치적 성격
부산박물관
발행: 2009년 1월 · 262호 · pp. 3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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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謝玄破奏百萬兵圖〉에는 숙종의 감상을 거쳤음을 증명하는 御印이 찍혀 있다. 인물, 말, 산수 표현에는 꼼꼼하고 숙달된 필치가 간취되며 청록 안료와 金泥 등이 그림 채색에 사용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이 그림이 숙종대 도화서 화원에 의해 제작된 궁중회화일 가능성을 시사한다.*br* 그림 제목만을 놓고 볼 때 〈사현파진백만명도〉는 중국 워진ㆍ남북조시대 ?水 부근에서 東晋 장수 사현(謝玄,343-388) 이 前秦 왕 부견 (?堅, 357-385)이 이끄는 백만 부대를 격파한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다. 그러나 좀더 정확히 말하면 이 그림은『晋書』등의 중국 역사서에 기술된 장면, 즉 부견과 그의 병사들이 비수 전투에서 동진군에 패하여 달아나는 모습을 형상화한 역사고사도로 추정된다. 이를 반영 하듯 그림 속 모든 표현 요소들은 위 史書의 내용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br* 그림 수장가 혹은 감상가로 널려 알려져 있는 숙종(蕭宗, 1674-1720)은〈사현파진백만병도〉와 같은 역사고사도 제작을 자주 지시하였다.〈齊威王奉卽墨大夫烹阿大夫圖〉, 〈黃龍負舟圖〉 등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숙종은 자신의 정치적 행위의 정당성을 강조하거나 선전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역사고사도를 제작해 활용하였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사현파진백만병도〉는 부견의 패배 장면을 시각적으로 이미지화하어 부견이 실천하지 못했던 內治와 自强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한편, 老論과 少論의 갈등으로 점철된 당시 정국의 혼란을 매듭짓고자 했던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숙종이 그 제작을 지시한 그림으로 사료된다. 따라서〈사현파진백만병도〉는 조선시대 회화가 가졌던 공리적 가능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자 조선시대 국왕이 통치의 한 수단으로 회화를 활용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파악될 주 있을 것이다.*br* 〈사현파진백만병도〉는 양식과 화풍 면에서도 조선 후기 회화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 그림에는 전통격인 요소에 더하여 「黃明英烈傳』 등 명대 소설 판화 및 명대 산수 판화 등으로부터 영향 받은 새로운 요소를 반영하고 있다. 또한 화풍 면에서 《歷史故事人物畵冊》 등 18세기 초반에서 18세기 중반 사이에 주로 도화서 화원들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들과도 연관되는 측면을 보인다. 그러므로 〈사현파진백만병도〉는 숙종대 궁중회화의 회화적 특징을 잘 보여줄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회화사에서 숙종대 궁중회화가 자치하는 위치와 중요성을 재확인시켜 줄 주 있는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될 주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