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淸末 趙之謙(1829-1884)의 화훼화와 그 영향
홍익대학교
발행: 2009년 1월 · 261호 · pp. 149-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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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논문은 청의 19세기 중후반에 활동한 趙之謙의 화훼화와 영향에 관한 연구이다. 그는 변화를 모색하는 당시 화단 속에서 金石畵風을 구현하여 海上畵派의 시작을 열어 주었으며 후대 화가들이 20세기 전통화단을 개척하는데 기반을 마련하였다.*br* 그러나 그에 대한 기존의 연구는 그가 해상화파에 속하는가 하는 귀속 문제와 금석화풍과 해상화파의 관계에 대한 부분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리하여 본 연구에서는 조지겸의 회화 창작에 근간이 되는 예술사상과 예술 성취에 대해 분석적이고 종합적인 연구를 시도하여 그의 회화사적 의의를 모색하려 하였다.*br* 본 논문은 학문관과 예술사상이 가장 잘 반영된 화훼화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그의 화훼화는 본인이 스스로 1863년경 화풍을 전환하였다고 기록하였듯이 1863년을 기점으로 두 시기로 구분된다. 1857년부터 1862년까지의 前期에는 전통 화훼화의 화법을 학습하고 당시의 상업적인 경향에 부응하여 대중적이고 화려한 화훼화를 제작하였다. 1861년에도 독창적인 〈異魚圖卷〉과 〈毆中物産圖卷〉을 제작하였는데 이는 그가 이전부터 연구해 온 고증학에 대한 관심과 지방의 독특한 사물을 기록해 내려는 남다른 시각에 희한 것이다. 後期에 들면, 북경에서 맺게 된 새로운 교유관계와 금석학의 학습, 서예와 전각의 연마로 화풍상에 있어 큰 변화를 보인다. 특히, 조지겸은 金石學과 碑學을 바탕으로 古代의 중후한 심미관을 찬미하였으며 書ㆍ畵ㆍ印의 밀접한 관계를 인식하였고 ‘拙’이라는 필묵의 최후의 경지를 추구하였다. 이러한 예술사상을 토대로 전각과 서예의 조형적인 요소를 회화에 적용하는 금석화풍의 화훼화를 구사하였다. 이울러 직접 金石器物을 拓本의 기법으로 화면속에 그려낸 拓本 花卉博古圖도 제작하여 화훼화의 한 장르로 확립하였다.*br* 조지겸의 이러한 성취는 후대 吳昌碩, 任伯年과 같은 해상화파와 북경화단에도 흡수되어 20세기 초 전통화파 형성에 근간이 되었다. 특히 오창석에 선행하여 금석화풍으로 해상화파의 시작을 열어주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더욱이 그의 영향이 해상화파를 통해 19세기 후반 20세기 초 張承業을 중심으로 한 한국의 화단에도 미친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할 수 있겠다. 그가 확립했다고 간주되는 탁본 화훼 박고도와 해상화파의 그림들이 조선말기 器折枝圖의 구도, 표현기법, 제재 등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br* 조지겸은 19세기 화단 속에서 대중의 취향에 맞는 상업적인 창작활동을 한 동시에 자신의 학문적 관심에 의해 새로운 미감의 작품도 창작하였다. 이는 변모해 가는 화단의 양상을 잘 반영한다. 아울러 그가 아룬 성취가 후대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이른다는 것을 통해 그 동안 간과되었던 회화사적 의의를 고찰할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