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한양도성 내 ‘天·地·玄·黃’명 백자와 조선 전기 청화백자 출토 양상
명지대학교
발행: 2023년 1월 · 319호 · pp. 79-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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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경기도 광주(廣州)의 관요(官窯)는 백자가 조선시대 도자문화의 핵심으로 자리하도록 준수한 품질의 백자를 매년 생산하여 한양도성(漢陽都城)의 궁궐과 각종 관청에 제공했다. 관요 백자는 한양도성의 궁궐과 관청은 물론 매우 다양한 권역에서 소비되었다. 한양도성에 자리하는 87곳의 유적에서 조선 전기 대표적인 관요백자인 ‘天·地·玄·黃’명 백자가 출토되었다. 관요 백자가 출토된 유적은 종로대로 주변 같은 서울 구도심의 핵심부를 필두로 비교적 광범위한 권역에 자리한다. 관요 백자가 한양도성 내 여러 유적들에서 출토되는 것은 관요 백자가 사옹원(司饔院)이 담당했던 다양한 업무에 포괄적으로 사용된 일종의 소모품이었기 때문이다. 관요를 통한 백자의 지속 생산은 한양도성 내 백자의 지속 소비를 가능하게 했고, 조선 전기 백자문화의 성장에 중요한 동력 가운데 하나로 작용했다. 그에 반하여 조선 전기 관요의 청화백자는 주로 왕실을 중심으로 특정 계층만이 사용할 수 있었다. 한양도성에서 이루어진 500여 건의 발굴조사 가운데 조선 전기 청화백자가 출토된 유적은 38건에 불과하며, 출토된 유물도 143점으로 매우 소량이다. 조선 전기 청화백자는 한양도성에서도 청진동과 공평동처럼 종친이나 외척이 집중적으로 거주하는 지역에서 주로 출토된다. 출토된 유물 가운데 다수는 전접시와 항아리이며 공사(公私) 간에 주기(酒器)로 적극 활용된 전접시에는 다양한 종류의 문양이 장식되었으나, 각종 연회에 의례기로 사용되거나, 성균관(成均館) 등 공적 공간을 장식하는데 활용된 항아리에는 주로 세한삼우문(歲寒三友紋)이나 운룡문(雲龍紋) 등 일정한 소재의 문양이 집중적으로 장식되는 특징이 나타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