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바늘과 실의 帝國’ 唐代 皇權과 繡佛
원광대
발행: 2022년 1월 · 316호 · pp. 107-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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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고는 당대에 수상이 불교 미술의 주요 매체로 새롭게 등장하는 현상에 주목하고, 수상의 기능과 용도, 그리고 제작 배경을 논의한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초당기 황권에 의한 수상의 제작과 하사 등을 주요 연구 대상으로 했으며, 이 시기 수상의 현존 사례가 적어 문헌과 문자 기록에 대한 분석을 통해 연구를 진행했다.*br* 당대 초 수불의 유행은 황권이 주도했다. 태종과 고종은 각각 대형 수상을 勝光寺와 慈恩寺에 하사하고, 관련 의례를 행하도록 했다. 그리고 장안성 大路에서 열린 대형 불교 의례에 궁중에서 제작한 수상을 다수 참여시켰다. 고종 乾封 원년(666) 전국 각 州에 하나씩 官寺를 설치하는 諸州官寺制 실시 이후, 동일한 특정 도상의 수상이 각 주 관사에 유포됨으로써 수상은 당대 통일적인 불교 미술 문화 형성의 주요 요소가 되었다.*br* 7세기 전기~중기 唐朝는 국내 통일을 이룩했지만, 대외적으로는 주변 민족과의 전쟁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러므로 다량의 금속이나 남성 노동력이 필요한 대형 금동상 등의 제작은 어려웠다. 이를 대신한 것이 여성 노동에 의존하는 수상이었다. 황권에 의해 시작된 수상의 제작은 8세기에 민간으로 확대되며, 중국 불교미술사상 ‘수상의 시대’를 활짝 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