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초록
Research Article

朝鮮 後半期 關北名勝圖 연구

박정애

중앙대학교

발행: 2013년 1월 · 278호 · pp. 6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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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조선시대 관북지역, 즉 함경도 소재 명승의 시각화는 1664년에 北道試官으로 파견된 金壽恒(1629~1689)이 편찬한 ≪北關酬唱錄≫에 실린 화원 韓時覺(1621~?)의 實景圖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1674년, 함경도관찰사 南九萬(1629~1711)이 왕실사적과 지역의 명승을 널리 알리고자 해당 경관을 설명하는 記文과 실경도를 조합해 완성한 ≪咸興十景圖≫와 ≪北關十景圖≫가 등장한 이후 본격화되었다. 총 20경으로 이루어진 ‘南九萬題 關北名勝圖’는 그의 생존 당시에 이미 한양에 알려졌고, 함흥 현지에 보관된 異本은 후임 관리들이 摹寫本을 만드는 데 활용되었다. 현재 1674년 당시에 제작된 작품은 알려져 있지 않으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咸興內外十景圖≫가 원본을 충실히 답습한 사례로 꼽힌다.*br* 이처럼 17세기 후반에 확립된 남구만본의 틀은 19세기말까지 큰 변화 없이 유지되며 관북명승도의 전개를 견인하였다. 현존하는 조선 후기와 말기의 관북명승도는 각각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1731년에 제작된 ≪함흥내외십경도≫나 1882년에 羅元石이 그린 ≪咸興十景圖 關北十景圖≫와 같이 남구만본의 원형을 간직한 臨摹作 계열이다. 이들 작품은 상대적으로 회화성이 떨어지고 17세기 후반의 양식적 특징을 보전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18세기에 제작된 동아대학교박물관의 <廣浦圖>와 1890년에 趙重?(1820~?)이 그린 ≪關北十勝圖≫처럼 제작 당시 중앙화단에서 유행하던 南宗畵風이 적용된 작품으로 세련되고 안정된 필묵법이 구사되어 있다. 첫 번째 유형의 경우 1731년에 시관으로 파견된 尹淳(1680~1741)의 주문으로 ≪北關別科圖≫와 함께 현지에서 완성되었다고 판단되는 ≪함흥내외십경도≫의 작자나 나원석이 모두 지역화사이다. 그리고 두 번째 유형은 조중묵과 같이 중앙에서 활약하며 명성을 얻은 화가의 솜씨가 발휘된 작품으로 생각된다. 즉 새로운 화풍의 습득이 원활하지 않았던 지역화단의 한계와 보수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중앙화단과의 격차를 방증한다.*br* 이상과 같이 관북명승도는 장기간에 걸쳐 꾸준히 제작되었지만, 관련 인사는 김수항·남구만·韓章錫(1832~1894)·洪岐周(1829~?) 등 대부분 외지 출신 문인관료들이다. 또한 18세기 중반부터 감영에 軍官畵師가 파견되었으나 이름이 알려진 화가의 작품은 드물다. 아무래도 변방에 대한 물리적, 정신적 거리감이 컸던 탓에 순수한 紀行寫景을 목적으로 관북지역을 찾는 일은 흔치 않았던 것 같다. 남구만의 정형이 고착화되어 내려온 것도 외부의 자극이나 새로운 시도가 부족했음을 드러낸다. 그 결과 지방관을 비롯한 파견 관리들이 핵심 주문층으로 자리 잡았고, 官歷을 기념하는 일종의 ‘宦遊物’로 제작되는 경향을 띠었다. 문자기록을 통해 관북의 실정과 풍속을 증언한 대다수 문사들이 外地人이었던 점과 같은 맥락선상에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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