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초록
Research Article

은일(隱逸)의 표상에서 공적 권위의 재현으로: 고려 말 조선 초 기영회도의 도상 및 성격 변화

이유정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

발행: 2026년 6월 · 330권 · pp. 43-72

DOI: https://doi.org/10.31065/kjah.330.202606.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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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논문은 고려 말부터 조선 전기에 이르는 기영회도(耆英會圖)의 사례를 기로(耆老)의 자기 표상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하여 기영회도의 도상 변화 양상을 고찰한 연구이다. 고려 말 기로들은 현실에서 은퇴 이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했으나 회화에서는 자연 속에서 거문고·바둑·시·음주를 즐기는 은일적 문인으로 자신을 표상하는 경향이 강했다. 〈해동기로회도(海東耆老會圖)〉, 〈원암연집도(元巖讌集圖)〉, 〈태위공기우도(太尉公騎牛圖)〉와 같은 사례는 이러한 전통을 보여 준다. 이후 조선시대에 들어 기영회는 제도적 지원을 받기 시작했으나 그 공적 정당성이 충분히 인정되지 못해 지속적으로 도전을 받았다.이에 따라 공적 행사로서 기영회의 위상을 보여 줄 수 있는 새로운 기념 방식이 요구되었다. 중종(中宗, 재위 1506~1544) 대의 기영회를 기념한 병풍은 아집도 전통을 따르면서도 발문과 시문을 통해 기로의 정치적 위상을 강조한 그림이었다. 이후 명종(明宗, 재위 1545~1567)과 선조(宣祖, 재위 1567~1608) 대에 고위 관료로서의 모습과 국왕의 후원 도상이 강조된 기영회도는 이와 같이 기영회의 정치적 위상이 강조되던 상황을 배경으로 등장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처럼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이루어진 기영회도의 변화는 단순한 양식적 발전이 아니라 기로와 기영회를 둘러싼 정치적 인식 변화의 결과였음을 알 수 있다.
키워드: 기영회도(耆英會圖)기로회(耆老會)기영회(耆英會)해동기로회도(海東耆老會圖)원암연집도(元巖讌集圖)중종(中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