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지방 화원에서 어진 화사로: 채용신의 초기 화풍 정립과 1900년 어진 제작
문화체육관광부
발행: 2026년 3월 · 329호 · pp. 77-104
DOI: https://doi.org/10.31065/kjah.329.202603.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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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전주에서 지방화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던 채용신(蔡龍臣, 1850~1941)이 1900년 어떻게 태조 어진의 주관화사로 발탁될 수 있었는지 살펴보았다. 고종은 태조 존숭을 위한 여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태조 어진 모사를 진행하였다. 채용신에 대한 연구는 1906년 정산군수에서 물러나 낙향한 이후 전북 지역 활동 시기에 제작된 초상화에 초점을 맞추어 이루어져 왔다. 해당 시기(1906년~1930년대)에 그가 제작한 초상화가 100여 점이 넘으며, 이에 비해 1906년 이전의 작품은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본고에서는 자료의 부재로 연구의 공백이었던 1900년 이전 채용신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 1896년 <송병선 초상>을 그가 그린 것으로 새롭게 밝혔다. 또한, 그가 1899년 전주 조경단 영건 사업에 참여하여 그린 도형들을 통해 지방 화원로서의 활동 양상을 살펴보았다. 무수한 붓질로 안면의 피부결과 입체적 느낌을 표현했고 그 결과 조선시대 어느 화가보다도 훨씬 사실적인 효과를 이루어냈다. 중앙 화원제도가 무너지고 사진이 초상화를 대체할 수 있는 매체가 되었던 시점에 채용신의 전통화법에 근거한 초상화는 오히려 어진 화사로서 그의 경쟁력을 높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